1975년 프랑코가 죽자, 스페인 사회를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. 억압적인 제도와 규율들이 하나 둘 풀리면서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 역시 정치적인 주제들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하고 개인적인 관심을 영화로 표출하게 된다. 스페인을 상징하는 열정적인 춤을 소재로 한, 이른바 '플라멩고 3부작'인 <피의 결혼식> <카르멘> <매혹적인사랑>은 바로 그 지점에 서 있다. 가르시아 로르카의 비극을 무용화한 <피의 결혼식>은 이들 3부작의 첫 번째 영화로 '이 세상의 모든 요소들을 음악으로 완성한 것이 플라멩고'라고 믿는 그의 굳은 신념을 보여준다. 중편영화라고 할 만큼 그리 길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그는 유려한 플라멩고의 율동과 박자를 강렬하게 담아낸다. 언제나 사회적 발언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문화적 자양분을 효과적으로 담아내 온 그의 장기는 <피의 결혼식>에서 유례 없이 극적으로 드러난다. 1983년 아카데미 최우수외국어영화상 후보, 1982년 프랑스영평상 작품상 수상. 결혼식 날 아침, 어머니는 신랑이 결혼예복을 입는 것을 도와주는 중이다.